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경제 성과 전람회장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[[소련]] 시절인 [[1930년]], [[이오시프 스탈린]]이 [[소련]]의 [[농업]] 분야 성과를 선전하기 위해 농업박람회를 하기로 하고 지은 건물이다. [[1935년]] [[2월 17일]] 첫 개장을 하고, [[제2차 세계 대전]] 직전이던 [[1939년]] [[8월 1일]] 대대적으로 확장 공사를 하여 현재의 규모와 얼추 맞아 떨어지게 된다. 그러나 [[제2차 세계 대전]]에서 [[독소전쟁]]으로 인해 [[나치 독일]]이 [[모스크바]]와 그 인근을 [[폭격]]하면서 본당은 화를 면했지만 본당 주변 지구가 잿더미가 되기도 했다.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[[1954년]]부터 [[1958년]]까지 [[니키타 흐루쇼프]] 치하에서 [[리모델링]] 및 주변지구 재건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된다. 이후 --쓸데없이 크고 웅장하다는 점 덕분에-- [[소련]]의 선전물로 잘 써먹혔다. [[1991년]] [[소련 해체]]가 이뤄지자, [[보리스 옐친]] [[러시아 대통령]]이 전러시아 박람회장(Всероссийский выставочный центр)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. 그러나 [[러시아]] 주민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베데엔하라고 불렀다. [[드미트리 메드베데프]] 대통령 때인 [[2010년]] 건물 [[리모델링]]을 결정하였다. [[2014년]] [[리모델링]]이 완공됐을 때 [[블라디미르 푸틴]] [[러시아 대통령]]이 원래의 이름인 국민경제 성과 전람회장으로 돌려놨다.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1호관부터 [[낫과 망치]] 문양과 소련의 국명이 그대로 새겨져 있어 구 소련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. 일반적인 컨벤션 센터와 달리 이 곳은 박람회 용도로 조성된 곳이다 보니 넓은 부지 위에 독립 전시관 여러 개가 산개되어 있는 형태를 갖고 있으며, 이 때문에 현대에는 상업전시관보다는 박물관이나 교육시설 단지로서의 역할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. 실제 방문해 보면 재건축으로 열지 않은 전시관도 많다. 다만 규모는 작지만(24,500㎡로 대구 [[EXCO]]와 비슷한 수준) 75호관에서는 일반적인 상업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